내성천은 준설구간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송리원댐으로 인해 모래유입이 줄어들어 모래하천인 내성천의 경관이 수년 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또한 송리원댐으로 봉화는 상수도 보호구역 지정, 안개일식으로 인한 특산농산물 피해, 관절염 등의 고통으로 반대의 열기가 높으며, 영주지역은 댐 30m 아래 위치하게 돼 물폭탄의 위험을 안게 되지만 대체로 찬성을 하고 있다.  
예천의 내성천은 낙동강 1지류하천에서 ‘모래하천’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으며, 안동에 버금갈 정도로 역사문화의 고장이다. 주변에 의성포, 삼강주막, 부석사 등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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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성천


내성천은 봉화의 오전에서 발원해 영주를 거쳐 예천에서 드넓은 강의 모습을 갖춘 낙동강의 서쪽 제1원류다.  

소백산의 남쪽 기슭 물을 다 받아낸 내성천은 예천을 가로질러 예천 풍양의 삼강까지 장장 260리(106.29km)를 내달려 합류한 뒤 명실상부 상주에 낙동강의 물길을 열어 주고 있다.

낙동강이 영남의 젖줄이라면 내성천은 예천의 젖줄이다.  예천의 내성천은 수천년 역사와 문화, 문학을 한꺼번에 안은 인재의 고을이다. 안동 인재의 반이 예천이라더니 퇴계의 외가가 바로 지보면 죽림리 춘천 박씨 가문이다. 퇴계의 제자만도 31명에 달했다.
내성천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내성천이 반달 모양으로 굽이치는 그 중간 지점의 강변 절벽 위에 서원이 보인다. 바로 도정서원(호명면 황지리)이다. 예천이 배출한 정승 중의 한 명인 약포 정탁의 위패를 모신 곳이자 약포의 셋째 아들인 청풍자 정윤목을 추향하는 곳이기도 하다.  실학의 거두인 다산 정약용도 당시 고을 원님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예천에 왔다. 17살이었던 다산은 예천의 반학정에서 과거공부를 했고, 내성천을 유람하며 글도 남겼다. 예천 사람들이 다산의 실학사상이 움튼 곳이 예천이라 여기는 것도 이러한 인연에서 비롯하는 것 같다. 함양 박씨의 용문 금당마을, 예천 권씨의 용문 죽림마을, 안동 권씨의 용문 맛질마을, 한양 조씨의 감천 산골마을, 진성 이씨의 호명 백송마을, 동래 정씨의 우망마을, 청주 정씨의 고평마을과 삼강마을, 축산 전씨 영궁 소천마을 등은 예천을 대표하는 가문들이다.
또한 내성천은 자연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내성천은 은빛 백사장이었다.
낮에는 은빛 모래에 눈이 부시고, 밤에는 달이 백사장에 꽃 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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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몽대

◑ 선몽대 : 경북 예천군 호명면 백송리


백송리(옛 지명은 백사장이 백금같이 반짝인다고 해서 백금리였다)의 선몽대는 내성천을 대표하는 경승지다. 선몽대 입구에는 수백년이 된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백사장과 어우러져 내성천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성천은 그 옛날에도 명현거유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퇴계는 도산에서 선몽대의 아름다움을 못잊어 시로 노래했다. 약포 정탁, 서애 유성룡, 학봉 김성일도 선몽대에 시 편액을 남겼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라는 시조를 쓴 청음(淸陰) 김상헌(1570~1652)도 고향인 안동 소산에서 10리에 불과한 이곳 선몽대를 오가며 선몽대와 주변 경관이 얼마나 좋았기에 선몽대에 오른 은 이렇게 시(詩)로 읊었다.
沙白川明澹若虛 모래는 깨끗하고 냇물 밝아서 맑기가 텅빈 것 같으니
玉山瓊圃較何如 옥산과 옥구슬 가득한 정원에 비교하면 어떤 것이 더 나은가
仙區萬里應難到 만리 되는 신선의 땅 응당히 이르기 어려울 테지만
來往斯亭且莫疎 이 정자에 오고감을 또한 성글게 하지 말자 .
선몽대는 퇴계 이황의 종손(從孫)인 우암(遇巖) 이열도(李閱道, 1538∼1591)공이 1563년 창건한 정자다. 퇴계 선생이 선몽대란 이름 세 글자를 쓰고 시를 보내주었다. 이 시를 차운하여 우암 선생이 시를 썼으며, 이후로도 당대의 석학인 약포 정탁, 서애 류성룡, 청음 김상헌, '오성과 한음' 일화로 유명한 한음 이덕형, 학봉 김성일 등이 퇴계의 시를 차운하여 시를 남겼다
이황은 선몽대 대호 삼자와 한 구절의 시를 친필로 써 주었는데  대 위에 오르면 선경을 이룰만큼 경치가 아름답다 하여 선몽대라 하였으며 이것이 지금까지 전하여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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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회룡포 마을(의성포마을이라고도 함). 비룡산

내성천 자연의 백미는 선몽대를 지나 회룡포(의성포)에 이른다. 삼강마을 뒤 비룡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회룡포는 물과 마을, 백사장이 만나 한 폭의 그림을 그려놓은 듯 아름다웠다. 늘 보아온 사진 속 회룡포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회룡포는 용이 비상하는 것처럼 내성천 물이 휘감아돌아간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강이 산을 부둥켜 안고 용틀임을 하는 듯한 특이한 지형의 회룡포는 한삽만 뜨면 섬이 되어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물도리마을로서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육지 속의 섬마을』이다. 이곳은 맑은 물과 넓은 백사장이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인근 비룡산에는 숲속 등산로와 원산성, 봉수대 등 역사적 정취가 숨쉬는 자연공원으로 산책과 등산코스로 적합하다. 또한 이산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운명선사가 세운 천년고찰 장안사가 산중턱에 있으며 이 사찰의 뒷산에 올라가면 팔각정의 전망대가 있어 의성포(회룡포)마을의 절경이 한눈에 들여다 보인다.
2000년도에 방영되었던 KBS 인기드라마 『가을동화』의 초기배경이 이곳 회룡포와 용궁면 소재지로 하여 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있다.



◑ 삼강 : 풍양면 삼강리 166-1 주요특색

삼강은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이 합류하는 곳이라서 붙은 이름으로 주변경관이 아름답고 맑은 물과 넓은 백사장이 어우러져 있다. 예로부터 이곳은 서울로 가는 길목으로 장사하던 배들이 낙동강을 오르내렸고, 문경새재를 가기 전에는 이곳 삼강 나루터를 꼭 거쳐 갔으며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여 이 주막등 상거래가 번성하였다.
그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주막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으며 그 옆에는 500년이 넘은 회화나무가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

이 회화나무는 아래와 같은 전설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300년전 상주군에 있는 한 목수가 이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면 사고도 나지 않고 큰 돈을 번다하여 연장을 가지고 이 나무를 베려하므로 사람들은 마을을 지키는 영험스러운 나무라 하여 베지 못하게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나무그늘이 좋아 낮잠이 들었는데 꿈에 백발을 날리는 노인이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서 "만약 이 나무를 해치면 네가 먼저 죽으리라"하므로 꿈에서 깨어나니 하도 생생하여 식은 땀을 흘리며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 혼비백산 달아났다고 한다.

Posted by 대구환경운동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