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지킴’, ‘강 살리기’구경인파 빙의?

<참언론 모니터> <영남일보> 낙동강 상주구간 방문객 ‘왜곡’




허미옥 |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사무국장

최근 4대강 공사현장 중 낙동강구간을 방문하는 시민들이 많아졌습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정치인, 언론 기자, 종교단체, 환경단체, 동네 주민, 또는 상주쪽 한 단체에서 기획한 프로그램에 참가합니다.

그들의 방문 목적이야 각기 다르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될 것입니다. 정부,여당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은 보 건설 현장의 높다랗게 쌓인 준설토와 구조물, 그리고 공사관계자들이 내보인 진척상황 등을 브리핑 받겠죠.

또 다른 한 그룹은 경향신문, 한겨레 등을 비롯한 진보성향의 언론, 종교단체, 환경단체 등입니다. 이들은 포크레인과 각종 중장비로 파헤쳐진 현장을 눈과 사진에 담으며 정부측 감언이설이 거짓말이었음을 어떤 형태로든 증명하려고 하겠죠. 그 방식은 기사, 블러그 글, 트위터 한줄 메시지, 낙동강 순례 감상문 쓰기 등 다양할 것입니다.

▲ 강과습지를 사랑하는 사람들 카페 초기 화면

특히 주목받고 있는 곳은 상주 쪽입니다. 지율 스님과 강과 습지를 사랑하는 상주사람들(이사 강습사)이라는 단체에서 매주 낙동강순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기획 취지는 정부여당측이 주장하는 ‘4대강 살리기’가 아니라, 이 정책으로 훼손되고, 난도질 당하는 ‘낙동강을 지키기 위한 활동’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순례한 함께했던 많은 기자들은 죽어가는 강 현장과, 함께 했던 순례객들이 느낀 감상을 기사화시키기도 했습니다.

<영남일보>, 사실과 진실의 착각

그런데 지역의 한 신문에서 이 사실에 이상한 해석을 해, 독자로 하여금 ‘헉?’소리나게 했습니다. 특히 지율스님과 함께 낙동강 순례를 다녀온 저에겐, 너무도 황당한 사실이었습니다.

기사의 맥락에 따르면 ‘낙동강을 지키기’위해 작은 마음이나마 보태고자 참석한 사람들의 모습을 ‘강살리기 사업보기 위해 관광(?)온 사람들’로 빙의시켰습니다.

<영남일보>는 지난 3월 4일 <‘강따라 뚜벅뚜벅’ 상주 명소됐네>를 통해 낙동강, 특히 경천대, 회룡포 등을 함께 볼 수 있는 상주지역을 찾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 <영남일보>3월 4일 11면

그리고 기사의 중간제목으로 “낙동강 투어로드 인기, 강 살리기 사업 보려 인파 몰려”라고 뽑아두고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사실일까요? 검증 들어가 보겠습니다.

일단 상주시가 낙동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릴 수 있는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총 33㎞구간에 85억을 투입해 ‘낙동강 투어로드’를 개설했지만, 당초 기대와는 달리 자전거 이용객이 거의 없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최근 4대강 공사가 시작되면서 이 곳을 도보로 걷기 위해 방문객이 는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방문객이 늘어난 이유입니다.

앞서서도 말씀드렸지만, 언론인, 종교인, 시민 등등이 ‘낙동강 지키기’라는 화두를 실천하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입니다. 지율스님과 시민단체 강습사에서 매주 ‘순례’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얼마전 박원순 아름다운 재단 이사 등이 다녀가면서 더더욱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방문객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

<영남일보>측에서도 이 사실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 <영남일보>2월 2일 9면

해당 신문은 2월 2일 <“공사 방해 뜻은 없어, 현장 우리 눈으로 보자는 것”>이라며 이 순례 행사를 상세하게 소개했었습니다.

그리고 한달 후 갑자기 이 흐름이 <강 살리기 사업 보기 위한 인파>로 뒤바뀌었더군요.

강과 습지를 사랑하는 상주사람들 이국진 사무국장은 이 기사를 보고 “강 죽이는 현장을 보러 사람이 몰리는 거겠지요”라며 착잡해하며 말을 아꼈습니다.

<영남일보>는 2008년 한반도 대운하, 2009년 4대강 살리기와 관련 정부 여당 측의 장밋빛 주장만 그대로 지면에 옮겼을 뿐, 이 정책에 오류를 제기하는 대부분의 정보를 지면에서 배제했습니다. 더불어 공사현장의 각종 문제, 민원, 지역사회 피해 등 지역언론에서 주요하게 다룬 뉴스마져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언론은 ‘사실’을 말하면서 ‘진실’을 감추기도 합니다. <영남일보>가 본 사실은 ‘낙동강 투어로드에 방문객이 증가하고, 그 사람들 대부분이 낙동강 살리기 사업을 보기 위한 시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면에 감춰진 진실은 <영남일보>의 지향 즉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4대강 사업 홍보’를 위해서라면, 새로운 현상이 무엇이든 간에 무조건 자신의 관점에 맞춰서 해석하는 ‘부당한 저널리즘’ 관행이 그대로 녹아져 있습니다.

▲ <영남일보>3월 4일 사진

이 사진 속 인물들에게 여쭙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진정으로 ‘강살리기 사업’을 보시기 위해 상주 낙동강 투어로드를 찾으신 것입니까?


※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언론모니터팀에서 3월 8일 발표한 보고서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2010-03-09 12:10:58
Posted by 게으른개미
경 천대는 하늘이 만들었다 하여 일명 자천대(自天臺)로 불리는 경천대와 낙동강물을 마시고 하늘로 솟구치는 학을 떠올리게 하는 천주봉, 기암절벽과 굽이쳐 흐르는 강물을 감상하며 쉴 수 있는 울창한 노송숲과 전망대 등 태백산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 1,300여리 물길중 경관이 가장 아름답다는 “낙동강 제1경”의 칭송을 받아 온 곳으로 국민관광지로 널이 알려 졌다. 그러나 11m 상주보로 인해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사라지고 오리배가 다니는 유원지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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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천대 :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 삼덕리

영 남인에게 낙동강은 온유하고 넉넉한 어머니의 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먼 옛날부터 낙동강물을 끌어당겨 농사를 지었으며, 산업화가 시작되자 강물로 공장을 돌렸다. 언제나 한가롭게 굽이치며 생활을 풍요롭게 해주던 낙동강. 그러나 낙동강도 상주에서만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동 쪽 면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이룬 천주봉과 만나 부딪히며 한 폭의 그림 같은 절경을 빚어냈기 때문이다. 이 아찔한 아름다움을 바라보노라면 여기서만은 생활 속의 낙동강이 아니라 환상 속의 이름 모를 물줄기라는 느낌이 든다. 이처럼 낙동강의 아름다운 전경은 끊어질 듯 말 듯 하며 계속 이어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이 경천대이다.

경 천대에는 하늘로 우뚝 솟아오른 절벽 위로 송림이 우거져 있고, 반대편에는 금빛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으며, 그 사이로 푸르디푸른 강이 흐른다. 이 눈부신 절경을 경천대에서 내려다보면 이곳의 빼어난 경관에 대한 찬양과 명성이 헛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뿐 만 아니라 경천대에는 임진왜란 때의 명장 정기룡 장군이 젊었을 때 이곳에서 용마와 더불어 수련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그때 장군이 바위를 파서 만들었다는 말먹이통이 남아 있다. 또 병자호란으로 인해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나라 심양으로 볼모로 끌려갈 때 따라가 함께 고생했던 우담 채득기 선생이 후일 모든 관직을 마다하고 은거했다는 무우정이 있다.

 

경 천대 관광지내에는 전망대, 야영장,목교,출렁다리, MBC드라마 상도”세트장, 어린이 놀이시설, 수영장, 눈썰매장 및 식당, 매점 등이 갖추어져 있고, 소나무 숲속의 아담한 돌담길과 108기의 돌탑이 어루러진 산책로와 맨발체험장 및 황토길이 있으며, 인근에는 “전 사벌왕릉”과 “전 고령 가야왕릉”이 있는데, 1592년 선조 25년 경상도 관찰사 김쉬와 함창 현감 이국필에 의해 묘비가 발견되어 가야왕릉임이 확인되었다. 왕릉과 왕비릉이 있으며, 경상북도 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외 “화달리 3층석탑”, 임진왜란의 명장 정기룡장군의 유적지인 “충의사”, “도남서원”등 여러 문화유적지가 있으며, 상주활공장, “MBC드라마 상도”세트장(중동), 상주예술촌 등이 있어 가족과 함께 편안한 휴식과 관광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돌탑과 황토길) 각광받고 있다



◑ 도남서원은 상주시 도남리 175번지, 낙동강 무임포에 있다. 이 서원은 1606년(선조 39)에 창건하였고, 1676년(숙종2)에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1797년 (정조21)에 동서재를 세웠다. 이후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쳤으며, 1871년(고종8)에는 국령으로 훼철되었으나 향토 유림에서 1992년 복원에 착수하여 4년간 역사 끝에 강당 등을 일부 복원하였다. 2002년부터 2년간은 유교문화권 정비사업으로 정허루 등이 복원되었다.

‘도 남’이란, 정오가 제자 양시를 고향으로 보낼 때, “우리의 도가 장차 남방에서 행해지리라” 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조선의 유학 전통은 바로 영남에 있다는 자부심에서 이 서원은 탄생하였다. 1605년 4월 22일, 전 주부 등 8인이 묘우를 세워 유현을 모시기로 발의하고 통문을 내었으며 5월 7일, 옥성서당에 모여 서원건립을 의결하였는데 회원은 60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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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외 상주 인근 경풍교, 상풍교, 경천교강창교, 중동교 등 다리에서보는 낙동강 비경과 영강과 합류지점 및 퇴강리 낙동강 시발비, 강창나루, 토진나루 비를 볼 수 있다.
Posted by 대구환경운동연합